• 서울
    B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B
    미세먼지
  • 부산
    B
    미세먼지
  • 강원
    B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B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B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최종편집2024-03-29 18:38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에메랄드물빛에 아롱대는 허공
에메랄드물빛에 아롱대는 허공
  • 권동철 전문위원, 데일리한국 미술전문기자
  • 승인 2016.08.02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독 서양화가 한영준
▲ 구겨짐-phenomena, 92×64㎝ 한지에 크레용과 아크릴, 2016

아주 우연히 연녹색사과 하나가 곧 수직으로 낙하하여 바다깊이 떨어질듯 하늘 위에 걸려 있는 걸 목도했었어. 걸려 있는 듯 했지만, 실상은 스스로 떠올라 있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 같았는데 고백하자면 그 광경을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니? 노을은 검붉고 수평선 너머 윙윙 세차게 흔들리는 불안의 기류가 광막(廣漠)한 침묵으로 깔려있었지. 그런데 그건 ‘나’의 느낌이었을 뿐, 이상한 건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하는 시큼한 맛이 도는 그 사과는 너무나 태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당하게 떠있었다는 거야. 마치 꼭지가 언제나 하늘방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탱탱한 표피를 유지한 채로. 

▲ 64×92㎝

풀언덕에 힘없이 풀썩 주저앉는 깡마른 ‘그’를 보게 된 건 긴장과 불확실성이 팽팽한 그때였어. 바람에 곧 날아갈 듯 한 섬약한 체구는 겨우 고개를 든 채 한참동안 멍하게 풍경을 바라보다 낡은 배낭에서 몽당연필을 꺼내 시나브로 뭔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러니함과 언밸런스 투성이로 가득한 삶. 오늘 난 세상의 진창에서 신비로움과 갸륵함을 보았네. 그것은 자신감. 빨간 사과를 연둣빛으로 받아내고 있는,”까지 쓰던 그가 갑자기 문장을 멈췄어.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뭔가 가냘픈 회한을 독백하듯 가는 신음소리를 낸 후 다시 써 내려갔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들리지 않는 것에 귀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며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헤아리고 이루지 못한 것을 소유하도록 밤의 긴 침묵 속에서 머리맡에 파닥이는 이것은 어떤 날개인지.”<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시, 사원의 문 앞에서, 나희덕 옮김, 진선출판사> 

▲ 92×64㎝

경쾌함, 희망을 부른 흔적 

긴 침묵에서 깨어나듯 경쾌하게 희망을 부르듯 스카이블루사과가 물살을 가벼이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치는 찰나였지. “하늘도 바다도 세상이 모두 푸르도다. 하늘의 사과들이 제 각각의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저 수평선 너머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아, 저 솟구치는 여명(黎明)까지 푸르게 물들일 수 있다면….” 처음으로, 낮고 거친 음성으로 그가 격렬한 어조로 소리쳤지만 그 앞을 허망함의 흐름이 낯설게 몇 번 오갔지. 그뿐이었어.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은 먹구름이 걷히고 누런 황금사과 달이 떠 있었어. 바닷물은 밝은 달 보다 더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노라 말하듯 보라색물결을 일렁이고 잔잔히 빛나는 물결위엔 어느 작은 새가 떨구고 간 하얀 깃털 하나가 뽀송뽀송한 베개를 베고 느긋하게 드러누워 있는 듯했었지. 오오 너그러운 한여름바다여, 깃털이여. 꿈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날아 가버린 새의 흔적이런가. 먼 길을 날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반짝거리는 수면위에 잠시 날개를 접고 쉬어 가도록 잔잔히 자리를 내어주다니! 

▲ 92×64㎝
▲ 92×64㎝

-----------------------------------------------------------------------------------------------------------------

서양화가 한영준

작가는 최근 1개월여 한국에 머물다 한지 등 한국적 화구(畵具)들을 구입하여 돌아갔다. 쾰른시내에서 떨어진 조용한 외곽에 자리한 소박함이 묻어나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내고 있는 그와 이메일(e-mail) 인터뷰했다. 한지의 구겨짐 위에 펼쳐지는 무한정신세계를 함의한 현상의 작품세계로 주목받고 있는 ‘구겨짐-phenomena’시리즈에 대한 근원적인 영감에 대한 질문에 뜻밖에도 유년시절 기억을 꺼냈다. 
“어릴 적 미술시간이 한없이 즐거웠다. 새로 산 도화지와 크레용냄새가 무지 좋아서 무엇을 그려야 될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행복한 아이의 모습 그대로 그냥 크레용을 들고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연유 때문이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드라마틱함이나 운명과 인연 그리고 고뇌와 그리움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여정처럼 느껴진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치 구겨져야만 되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겨지는 한지위에 조심스럽게 붓질을 하고 있으면 고요함이 더 해지고 한지와 함께 숨 쉬며 동행한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재독(在獨) 서양화가 한영준(HAN YOUNG JOON) 작가는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를 졸업하고 지난1994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뉘렌베르크 소재 빌덴덴 퀸스테 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에서 회화전공 졸업했다. 22년째 독일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이 보이는 라인(Rhein)강변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내 왔다. 
“유럽을 가로 질러 북해로 내려가는 물결은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힘차고 아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그에게 왜 하필 ‘사과’인가라고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했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원시적 욕망이 아닐까 한다. 사과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이미지와 동시에 복잡한 우리들 삶, 우주의 부산물같이 느껴진다. 잘 익은 사과는 마음의 풍족함과 기쁨 또 태양과 달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은밀하게 마음속 깊이 숨겨놓은 자신만의 욕구와 쾌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