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R
    9℃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H
    9℃
    미세먼지
  • 부산
    H
    10℃
    미세먼지
  • 강원
    H
    8℃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R
    10℃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H
    10℃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렸나요?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렸나요?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17.05.12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배우는 말이 ‘엄마’라고 합니다.

갓난애가 가장 쉽게 낼 수 있는 모음이 ‘ㅏ’이고 자음은 ‘ㅁ’인데 이를 한꺼번에 내는 ‘아마’가 그 원형이라네요.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옹알이에서 비롯된 이 말이 여러 과정을 거쳐 유아어(幼兒語)론 ‘엄마’, 성인어(成人語)론 ‘어머니’가 된 것이지요.

어머니란 이렇게 우리를 있게 한 생명의 원천으로, 존재의 근원이자 영원한 보호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으로서 나이가 적건 많건,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늘 “어머니”를 찾고 부르며 의지하는 것이죠. 그 분이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셨거나 관계없이 말입니다.

‘어ᆞ머ᆞ니’란 세 마디만큼 편한 말이 없으려니와 동시에 그보다 더 가슴 ‘쎄한’ 말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죠.

세상 모든 어머니들 치고 훌륭하지 않은 어머니가 없을까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시대 한국의 어머니들은 차라리 위대하다 못해 성스럽기조차 합니다.

그 분들은 한마디로 ‘드럽게 어려운 시절’을 오직 가족만을 알고,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그림자 같은 인생’들이셨으니까요.

빼앗긴 나라에 태어나 광복을 찾았나 무섭게 전쟁이 터지고, 난리통에 부모, 자식을 잃거나 생이별한 채 살아남으니 이번엔 쑥대가 무성한 폐허 뿐-.

다른 나라에선 천 년에 걸쳐 겪을 일을 한꺼번에 피눈물로 살아내면서도 진 자리는 오직 당신 몫인 양, 자식들에겐 마른자리를 내주신 그 하해보다 넓고도 깊은 사랑이라니….

‘음식이라도 맛을 보고 /쓰디 쓴 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달디 단 것은 아기를 먹여 /오뉴월이라 짧은 밤에 /모기 빈대 각다귀 뜯을세라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다 떨어진 세살부채를 손에다 들고 /왼갖 시름을 다 던지시고 허리둥실 날려를 주시며 /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설이 펄펄 날리는데 /그 자손은 추울세라 덮은데 덮어주고 발치발치 눌러를 주셨죠’(회심곡)

지극한 가난과 고통을 지극한 정과 사랑으로 변주해내신 당신들이야말로 천사요 보살이십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자식들은 미욱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들의 은혜는 어디에 저당 잡혔는지 잘 난 건 모조리 제 공덕이라 여길 뿐이니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몰라서, 무식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정이가 앉도록 듣고 배운 게 효도교육이었으니까요.

그 중 대표적인 게 ‘육적회귤(陸績懷橘)’이란 고사죠.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의 휘하였던 육적이 여섯 살 때 구강에서 원술을 만나 귤을 세 개 받았는데, 노모에게 드리려 먹지 않고 가슴에 품은 채 인사를 하려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들통이 나 지극한 효심을 칭찬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등 동양에서 효의 전범으로 대접받는 실화죠. 역대 문인이나 화가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육적은 귤을 품어 어머니께 드렸는데/오늘 누런 귤 보니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함께 사는 동무 집에 어머니 계시어 /보자기 펼치지만 누런 귤 나눌 수 없네‘

조선시대 노계(蘆溪) 박인로 역시 육적의 고사를 모티브로 삼아 꼭 같은 심사를 귤 대신 홍시를 통해 내보였으니 그 유명한 <조홍시가(早紅柿歌)>입니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노계의 이 시조는 교과서에 실려 웬만한 이는 다 기억할 정도이고, 이에 못지 않게 유명한 ‘효도송’이 송강(松江) 정철의 시조죠.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이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 또한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시골에서도 좀 산다하는 집마다 두껍닫이에 족자처럼 붙여놓았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합니다.

물론 애들 교육용이죠. 하지만 효도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효도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실천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천의 요체는 무엇일까요?

일찍이 원효 스님께서는 “효도란 나를 생각하기 전에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파하셨습니다.

효자는 부모가 낸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분들이 덜 외롭고, 덜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 그것이 단순한 호의호식(好衣好食)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이죠.

하지만 늘 공손히 모시다가도 경제적인 문제에 부닥치면 부모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게 대다수 자식들의 태도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답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임에랴!

꼭 이맘때 어떤 아들이 “꽃구경 가자”며 노모를 지게에 태운 채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이 힘들까봐 쉬었다 가자고 해도 아들은 아무 말 없이 계속 깊은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제야 낌새를 챈 노모는 지날 때마다 솔방울을 따서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뭣 하러 그러시느냐?”고요.

노모가 말했습니다. “네가 돌아갈 때 행여나 길을 잃을까봐.” 이게 바로 우리네 어머니의 생각이자 삶입니다.

명심보감에 ‘동온하량(冬溫夏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에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해드리라’는 말입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깜짝 쇼로 한두 번 즐겁게 해드리는 것보다 평소 할 수 있는 일들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자주 하는 게 좋다는 가르침이죠.

쉽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게 효도인 것같습니다. 우선 자주 찾아뵙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전화라도 자주 드립시다.

시작이 반입니다, 전화를 누르는 순간 당신도 효자로 거듭납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