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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9 18:38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방준혁 넷마블 의장, 흙수저의 잭팟 ‘레볼루션’
방준혁 넷마블 의장, 흙수저의 잭팟 ‘레볼루션’
  • 조혜승 기자
  • 승인 2017.06.01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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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게임사 넷마블게임즈의 비상은 어디까지일까. 최근 가장 핫한 인물로 게임업계를 넘어 재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방준혁(49) 넷마블게임즈 의장.

지난 5월 12일 코스피 공모가 기준 넷마블 시가총액은 약 14조원, 시총 순위 21위로 공모 규모만 2조6617억 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에 상장된 게임회사 중 1위인 넥슨의 기업가치(약 7조8000억 원)와 시총 순위 40위인 엔씨소프트(약 8조원)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5.1% 오른 16만5000원, 총 상장주식 수는 8473만주로 신주모집은 이중 20%인 1695만3612주다.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현재 넷마블 지분 2073만주(24.47%)를 보유하고 있다. 공모가로 그의 지분가치를 평가하면 3조2545억 원에 달한다. 이 액수는 국내 주식부자 6위 이재현 CJ그룹 회장(약 2조3000억 원)보다 많고 5위 최태원 SK그룹 회장(3조8000억 원)과 비슷하다.

‘흙수저’ 가난뱅이에서 3조 주식 거부가 되기까지, 방준혁 넷마블 의장의 성공신화는 드라마틱하다.

게임업계 유일 고교 중퇴 자수성가 CEO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중 대학에 가지 않은(또는 못 간), 소위 가방끈이 짧은 이들이 제법 있다. 이중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돋보이는 인물이다.

1968년생으로 만 49세인 방준혁 의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봉제공장이 즐비한 가리봉동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집안 살림살이에 도움을 주려고 고등학교 때 장사를 하다 사기 당해 그나마 사업 밑천을 모두 날렸다.

어려운 형편에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뒤엔 중소기업에 취직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는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업가를 꿈꿨다. 당시 국내 인터넷 서비스는 인프라가 깔리는 초기 단계라서 인터넷 접속 속도가 느렸다. 이 때문에 온라인 영화 콘텐츠 서비스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업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차례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방 의장은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 없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발굴한 아이템이 게임이다. 2000년 3월 직원 8명과 함께 강남 테헤란로 뒷골목의 작은 사무실에서 1억 원의 자본금을 밑천삼아 게임개발사 넷마블을 창업했다. 우선 여성과 10대 청소년이 주요 고객인 캐주얼 게임부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류에 편승한 온라인 게임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방 의장은 게임업계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촉’이 남달랐다.

그는 ‘남들과 같은 사업 모델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았다. 바로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 배급 시스템에 착안한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유통) 사업 모델을 선보인 것.

퍼블리싱은 인기가 있을 법한 게임을 출시 전 선별하는 일이다. 퍼블리싱은 외부에 게임 개발을 맡기고 유통과 마케팅, 자금 지원 등을 전문적으로 위임한 뒤 수익을 나눠 갖는 사업 형태다. 당시 온라인 게임 ‘라그하임’ ‘그랜드체이스’ 등을 퍼블리싱 하면서 사업 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2002년 국내 최초로 PC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것도 그다. 당시 게임 유통 구조 및 수익 모델 자체를 바꿔놓아 온라인 게임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 게임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넷마블 설립 1년 만에 10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모았고 2003년 상장사인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넷마블은 ‘테트리스’ 등 캐주얼과 웹보드 게임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연매출 1000억 원, 영업이익 100억 원을 달성, 국내 톱 게임 포털 업체로 거듭났다.

잘나가던 넷마블은 전환점을 맞는다. 2004년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지분 매각을 제안한 것. 방 의장은 고심 끝에 더 큰 성공을 위해 창업 4년 만에 넷마블 지분을 800억 원에 넘겼다.

지분을 넘긴 지 2년이 지난 2006년, 살인적인 밤샘 야근 때문에 건강이 나빠진 방 의장은 CJ인터넷 및 넷마블 경영에서 물러나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한동안 넷마블을 떠나 커피체인점 할리스 지분을 인수·매각하고, 포장지제조업과 소재사업을 하는 등 게임과 상관없는 일에 열중하기도 했다.
 

적자 시달리던 ‘중환자’ 넷마블 복귀

방 의장이 떠난 넷마블은 ‘선장을 잃은 배’처럼 위태로웠다. 2006년 이후 5년 동안 개발·출시된 19개 PC게임은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 그 결과 연간 수백억 원의 손실이 쌓였고 설상가상 주요 게임 배급 중단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최대 수익원이었던 게임 ‘서든어택’의 판권을 넥슨에 빼앗기는 등 위기에 처했다.

CJ그룹은 방 의장에게 다시 넷마블을 맡아달라고 구조 요청을 했다. 방 의장 지인들은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는 건 자살 행위”라며 복귀를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방 의장은 “자식(넷마블)이 중환자실에 있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방문하지 않겠느냐”며 “넷마블이 엔진만 고장났을 뿐 고치면 핵잠수함도 될 수 있다”고 했다. 방 의장은 주위 만류를 뿌리치고 2011년 총괄상임고문 자격으로 넷마블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넷마블에 다시 돌아온 방 의장. 이를 두고 글로벌 경제 매거진 <포브스> 아시아판은 1997년 위기에 처한 애플에 전격 복귀해 아이폰 성공 신화를 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닮았다며 방 의장을 ‘아시아의 스티브 잡스’라고 칭하기도 했다.
“5년 내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하겠다.”

2011년 넷마블 복귀 첫 날 방 의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같이 선언했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넷마블은 매출 2000억 원대에 머물며 매년 수백억 원 적자가 나는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어 직원들은 패배의식에 빠져있었다.

여기에서 그의 미래 수요를 읽는 통찰력이 나온다. 그는 2000년대 초 기존 온라인 게임 시장보다 향후 스마트폰 게임 시장이 대중화되고 커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국내 업체는 온라인 게임시장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화기 이상으로 스마트폰이 확산될 것으로 믿은 것이다.

그는 새판을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온라인 게임 사업을 포기하고 모든 역량을 모바일 게임 개발에 집중했다. 먼저 모바일 게임 개발 및 사업 조직을 확대하고 관련 사업 인프라를 조성하는데 전력투구했다.

2012년 방 의장 복귀 후 출시한 모바일게임 ‘다함께차차차’가 대박을 치면서 넷마블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방 의장이 복귀한 2011년, 넷마블 매출은 76억 원 수준이었다. 지난해엔 매출 1조5061억 원, 영업이익 2954억 원에 달했다. 2012년 모바일 레이싱게임 ‘다함께차차차’부터 ‘모두의마블’ ‘몬스터길들이기’ ‘세븐나이츠’ ‘리니지2 레볼루션’ 레이븐‘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대박을 친 덕분이다.

2014년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홀딩스가 5억 달러를 넷마블에 투자하고 지분 28%를 확보해 3대 주주가 됐다. 넷마블은 두둑한 실탄을 확보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투자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넷마블은 매출 1조5061억 원, 영업이익 2954억 원을 거둬 방 의장이 복귀하며 선언한 “5년 내 매출 1조원 달성” 약속을 지켰다. 

블룸버그는 “올해 Lineage 2 Revolution 출시 직후 롤플레이 게임을 하는 엔씨소프트와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며 “10대 재벌이 국가 전체 영업자산의 4분의 1 넘게 차지하는 한국에서 3000명의 직원을 둔 넷마블과 같은 기업의 주식 상장과 성장은 기존의 전통적인 사업 운영과 성공 측정 방식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방 의장 사업 감각 보여준 ‘레볼루션’

지난해 12월 출시된 넷마블의 대표작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2 레볼루션’은 출시 첫 달에만 2060억 원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이 게임의 탄생 배경에는 2년 전 사업계획을 세울 때부터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한 방 의장의 시대감각과 집념이 있다.

방 의장이 ‘임팩트가 약하다’는 이유로 게임명을 바꾼 점도 흥미롭다. 본래 게임명인 ‘리니지2 아덴의 새벽’을 레볼루션으로 바꾼 것이다.

방 의장의 경영 철학에서 두드러진 점은 인재를 뽑을 때다. 넷마블 인재 채용의 원칙은 학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 의장 스스로 학력과 관계없이 성공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이력서에 학력을 기재하는 칸이 있지만 형식일 뿐이고 회사 내에서 서로의 학력을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방 의장은 지난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진품 흙수저 출신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력서 상의 학력은 대기업을 못 따라간다. 그저 일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안정된 연봉과 백그라운드를 원하면 대기업 가고 사생활을 원하면 공무원을 해라. 나는 일에 젊음을 바칠 자세가 돼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인재 채용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방 의장의 인재 철학은 경험에서 만들어졌다. 일류대를 나온 화려한 스펙의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대부분 떠났다. 그는 이들을 보면서 벤처의 아픔을 삼켰다. 스펙보다는 회사에 대한 애정과 간절함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방 의장은 “지원자의 태도와 눈을 뚫어지게 관찰하면 간절함이 보인다. 벤처기업이라 업무량이 살인적인데 버틸 자신이 있느냐”고 물어 진솔한 답변을 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한 경험이 있는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 실패를 경험해 본 사람이 성숙해지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마블에는 망했거나 실패한 회사에서 이직한 직원들이 꽤 있다. 


“내 나이는 항상 39세다”

방 의장은 사석에서 “내 나이는 항상 39세다”라고 말한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와 동갑이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보다 한 살 많은 방 의장이 39살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39세가 10대부터 60~70대까지 아우르는 모바일 게임 이용자층의 중간 나이라서 그렇단다.

넷마블은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7월 미국 퍼즐게임 전문회사인 잼시티, 2016년 7월 ‘마블’ ‘해리포터’ 등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타이니코를, 올해 2월 ‘마블 올스타 배틀’을 개발한 카밤 밴쿠버 스튜디오 등을 인수했다. 글로벌 게임사로 올라서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이번 IPO(기업공개)를 계기로 확보한 2조5000억 원의 실탄도 M&A에 쓸 작정이다.

방 의장은 “2020년까지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5위 안에 들지 않으면 성장 기회가 더 이상 없다”며 아시아의 성공을 넘어 미국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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